CLARA어른이지만 동화책을 읽습니다.

스보헴
2021-01-20
조회수 101


이따금 아파트 보일러의 따끈따끈한 간접열 대신 모닥불을 쬘 때 느끼는 강렬한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건 제 마음이 동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라, 지난 주말 새 동화책을 샀습니다.  

어른이 된지 한참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동화를 좋아하고 자주 읽어요. 동화는 우리가 잊어선 안되는 가치들을 말해주거든요. 누군가 슬퍼하면 달래줘라, 곤경에 처한 사람은 도와줘라 등등.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제가 유독 추운 날 꺼내읽는 동화를 하나 추천할까 합니다. 


따뜻한 난롯가에서 '앵초'를 재울 준비를 하는 들쥐 엄마


바로 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 시리즈에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영국 도자기 브랜드 로열 덜튼(Royal Doulton) 사의 ‘브램블리 헷지(Brambly hedge)' 컬렉션으로 더 유명할 거에요.



로열 덜튼에서 출시된 사계절 이야기 접시.


정교하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이 그림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질 바클렘이라는 여성 작가가 쓴 시리즈 동화입니다. 

영국 에핑 숲 근처에서 태어난 질 바클렘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그림으로 옮기길 좋아했어요. 

그녀의 대표작인 동화 '찔레꽃 울타리'는 대학시절 등하교길 지하철에서 노트에 끄적인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1980년, 작업실에서의 질 바클렘.


찔레꽃 울타리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동화 중에서도 철저한 고증과 디테일 묘사로 유명한데요. 얇은 동화책이지만 한 권 완성하는 데 적어도 2년 이상 걸렸고 특히 첫번째 책은 배경 연구에만 5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저는 그 중에서도 봄과 가을의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봄이야기의 표지


봄 시리즈는 자작나무 집에 사는 ‘머위’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을 어른들이 발벗고 나서는 이야기에요. 마을 공동 창고인 그루터기 지킴이 ‘사과’ 할아버지가 떡갈나무 성에 사는 딸 ‘마타리’ 부인에게 달려가 몰래 생일 파티를 계획하는 게 시작이에요. 



'머위'를 위한 생일파티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수레를 밀고 있는 '머위'.


생일파티가 계획된 걸 꿈에도 모르는 ‘머위’는 선물에 대해 말도 못 꺼낸 채 마을 들쥐들이 모두 참여하는 소풍에 따라가요. 거기서 어른들이 준비한 깜짝 생일파티가 열리자 수줍어하다가 이내 신나게 피리를 붑니다. ‘머위’는 피리 불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런 ‘머위’를 위해 어른들이 먼저 피리를 불어달라며 무대를 만들어주고요.





선물에 둘러싸여 수줍게 피리를 부는 '머위'


특별한 반전은 없지만, 아이의 생일을 가장 즐거운 날로 만들어주기 위해 어른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에요. 




가을 이야기의 표지


가을 이야기는 일단 배경 묘사부터 마음이 따뜻하고 뿌듯해져요.


'맑은 가을날, 나무딸기와 들풀들 열매가 알맞게 익으면 찔레꽃 울타리 들쥐들은 매우 바빠져요.

씨나 열매, 나무뿌리 따위를 모아 저장 그루터기로 옮겨 차곡차곡 겨울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그루터기 안은 따뜻하고, 맛있는 나무딸기 잼과 빵 냄새로 그득합니다.'


곱고 차분한 색감의 일러스트와 함께, 소리내어 발음하고픈 아름다운 이름들이 등장해요.

'떡갈나무 성에 사는 마타리의 막내딸 이름은 앵초'


가을 이야기의 최대 위험은 바로 이 ‘앵초’가 길을 잃는 사건입니다. ‘앵초’가 어두운 숲속을 헤매는 사이 어른들은 ‘앵초’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찾아나서요. 그리고 독버섯 밑에서 부엉이 소리를 들으며 무서워하고 있던 ‘앵초’를 집으로 데려와 안심시키죠.



‘찔레꽃 울타리’의 모든 이야기들은 커다란 모험도 반전도 없어요. 

어린 아이가 길을 잃으면 어른들이 찾아오고, 생일이면 파티를 해주고, 겨울이 찾아오면 모두가 힘을 합쳐 즐거운 축제를 열죠. 단순하지만 힘들 때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소소한 기쁨들이 도처에 있는 풍요로운 일상입니다.  



냉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 가슴이 서늘해질 때마다 ‘찔레꽃 울타리’를 꺼내보면 그림 속 훈기가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스하게 데워주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야말로 동화가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잃었다가 돌아온 ‘앵초’에게 어른들이 했던 말을 제 자신에게도 똑같이 건네줍니다.


'수염을 내리고 편안히 쉬거라.

꿀과 우유와 과자가 가득하단다.

밤새 부디 좋은 꿈만 꾸거라.

내일 다시 해님이 떠오른단다.'



오늘 하루 길을 잃었지만,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안심하고 잠든 '앵초'


혹시 요즈음 서늘해진 마음에 온기가 필요하다면, 그 중에서도 모닥불을 쬐는 것 같이 즉각적인 훈기가 필요하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려요. 

(이미지는 영문판이지만,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보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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