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EUN합법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날

스보헴
2021-02-17
조회수 81

혹시 주변에서 생일이 국경일이거나 명절이신 분을 본 적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분은 어릴 때부터 생일 선물과 크리스마스 선물이 같았겠죠. 그래도 이렇게 기억 못할래야 못할 수 없는 날이 생일이라면 외우기 쉬워서 축하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그에 비해 제 생일은 애매한 날짜에요. 한국에선 설 연휴 또는 졸업식, 종업식이 겹쳤고, 체코에선 아무도 등교하지 않는 2학기 개강 첫 주였답니다.


지금은 별로 상관이 없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생일이 졸업식 혹은 종업식과 겹친다는 게 조금 불만이었어요. 왜냐하면 봄방학이 시작되고, 졸업하느라 누군가의 생일은 잊히기 딱 좋은 시기거든요. 그 시절에는 소심해서 친구들에게 제 생일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저는 항상 친한 친구들 생일은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날짜에 맞춰 챙겨주고 상대방도 그렇게 해주길 바랐답니다. 알아서 챙겨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잊어버리는 친구도 많았죠. 언제가 생일이라고 미리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잊을 수도 있는데, 그 때는 그게 참 서운했어요.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조금 적극적으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친한 동기들이 서로의 생일을 챙기며 그 핑계로 술자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학회에서 따로 이벤트처럼 회원들의 생일 파티를 열기도 했답니다. 다들 열심히 각자의 생일을 챙겨주는 분위기니, 저도 친구들에게 미리미리 생일 날짜를 알려주곤 했어요. 남이 알아서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열심히 제 생일을 알리고 다녔더니 자연스럽게 축하해주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고, 생일을 잊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죠. 그제야 '내 생일에 내가 즐겁게 지내려면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답니다.




프라하에서 차린 셀프 생일상 - 제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파티에 참석하는 친구들 위주로 요리를 해서 김밥이 메인입니다. 체코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들 김밥을 좋아했거든요.



프라하에서는 더 열성적으로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언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제가 먼저 체코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어울리기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고 만난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홈파티를 열었답니다. 이럴 때 생일은 파티 열기 딱 좋은 핑곗거리가 돼요. 제가 먼저 생일 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하고 함께 어울리면,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게 됩니다. 저에게는 그런 파티들이 체코 유학 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만들려는 방법이기도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과 가족들하고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적극적인 사교활동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홀로 외롭게 지내기 딱 좋거든요. 그렇게 파티를 직접 열다 보니 파티를 준비하는 재미도 느끼게 되었어요. 홈파티를 준비하며 초대할 사람 수에 맞춰 음식과 음료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하고 식탁을 세팅하는 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긴 한데, 같이 음식을 먹고 즐거워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보람차더라고요.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했던 제 생일파티 사진입니다. 저는 왼쪽에 와인잔을 든 손만 보이네요.




펍을 빌려서 열었던 같은 과 친구의 생일파티




뵈브 클리코, 그리고 카프카와 함께 했던 생일. 물론 가장 친한 친구들도 곁에 있어주었답니다.




저의 셀프 생축 케이크, 올해는 스보헴 동료들과 함께 축하했습니다.



제 주변에는 '생일 그거 뭐 별거냐, 매년 있는 건데.' 하고 대충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생일도 항상 축하해줍니다. 생일 안 챙겨도 된다고 하지만 막상 축하받으면 또 기분이 좋아지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살면서 일 년에 하루쯤은 자신을 좀 특별하게 여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기엔 생일이 정말 딱이지 않나요? 그날 하루, 내가 하는 일에 '생일'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평소에 항상 하는 일도 어딘가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맨날 마시는 커피도 '생일 커피'가 되고, 습관적으로 하는 산책도 그날은 '생일 산책'이 되는 거죠. 저도 며칠 전 그렇게 소소하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일을 보냈답니다. 파티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생일은 생일이니까요.




올해의 생일 커피



오늘 생일을 맞으신 분, 얼마 전에 맞으신 분, 또 앞으로 다가올 생일을 기다리시는 분들, 모두 모두 축하해요. 생일은 누구에게나 행복하게 빛나는 날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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