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EUN사진의 추억 (1)

스보헴
2020-11-05
조회수 153







처음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순간


어릴 적, 친척들과 간 소풍에서 아빠의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로 육촌 동생을 찍었어요.
수동 카메라라 찍는 데에 잔손이 많이 갔어요. 노출은 아빠가 맞춰 놓은대로, 초점은 제가 직접 맞춰 동생을 찍었어요.

다행히 동생의 얼굴은 선명히 나왔어요. 아빠가 처음인데 잘 찍었다고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제가 처음 찍었던 그 사진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무 아래 역광으로 웃고 있던 육촌 동생의 얼굴은
머릿속에 사진 그대로 남아있어요. 



대학교를 들어가자 


아빠가 SONY 디지털 카메라를 사주셨어요. 

아직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탑재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카메라를 어디든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즈음 친구들 사이에서는 필름카메라인 ‘롤라이35(링크)‘로모LC-A(링크)를 쓰는 게 유행이었던지라, 공강이나 주말이면
새 카메라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필름 카메라(니콘 FM10(링크)) 두 대를 짊어지고 종로와 홍대를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할아버지의 유품인 페트리 7s(링크)를 발견해 몇 장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노출계가 고장 난 카메라라 디카로 
따로 노출을 잰 다음 수동으로 맞춰 찍어야 했어요. 

그리고 이 시기엔 전공으로 듣던 사진 수업 때문에 다큐멘터리 사진도 찍고, 흑백 필름 현상 인화부터 
중·대형 카메라를 다뤄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어요. (지금은 사용법이 가물가물하네요.)


프라하에서는 DSLR


프라하에는 DSLR 하나를 가져갔는데, 학교에 입학하니 ‘또’ 사진 수업이 필수더라고요. 

필름 카메라를 가져오라기에 급하게 중고 카메라를 샀습니다. 벽돌처럼 무거운 동독산 ‘프락티카(링크)’였습니다. 
(동독, 서독의 그 동독 맞아요..)

그걸로 학교 사진 스튜디오가 있는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중에는 스튜디오에 모여 같은 조 아이들끼리 돌아가며 흑백 필름으로 서로를 찍어주고 인화했습니다. 
저는 시나리오 과의 ‘마르케타’를 찍었는데, 우아한 옆모습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올리고 찍었던 기억이 나요. 
그는 자기 코가 너무 큰 것 같다면서 부끄러워했어요.


마르케타의 사진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안나서 2010년 쯤 프락티카로 찍은 프라하 사진을 올려봅니다.


파티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은 저뿐이었는데, 저의 오래된 DSLR로 친구들을 찍고 있으면 
빈손으로 온 사진과 친구가 카메라를 뺏어 저를 찍었습니다. 
그렇게 제 페이스북에는 술 취한 친구들 사진이 가득 쌓여갔어요.


레트로 컨셉이었던 학교 파티 2009년 / 올림푸스 E500


학교 영화제 FAMUFEST 2009 / 올림푸스 E500



비엔나, 라 사르디나


그러다 비엔나에 가서 ‘라 사르디나(링크)’를 구입했습니다. 토이카메라라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으면 초점도 안 맞고 
노출도 엉망이었지만 꽤 열심히 찍었어요. 
바로 집 앞에 필름을 인화·현상해주는 사진관이 있어서 2, 3롤씩 찍어서 맡기곤 했습니다. 
가끔 건질 게 거의 없는 롤도 있었습니다. 사진이 너무 안 나온 것들은 집에 있는 필름 스캐너로 스캔해 
포토샵에서 최대한 보정해보기도 했어요. ‘라 사르디나’는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프랑스 ‘앙제 영화제’에 초청받을 때도 가져갔습니다. 
결과물은 엉망으로 나오지만 가볍고 귀여워서 들고 다니기 좋은 친구였어요.


2012년 비엔나 여행의 기념품 라 사르디나 (왼쪽 아래) 


앙제 거리, 2013년 라 사르디나 / 후지 수퍼리아 200



요즘은 


요즘은 예전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일이 별로 없어요. 
핸드폰 하나면 다 되니까 홈페이지에 올릴 제품 사진을 찍을 때만 쓰는 편이에요. 
작년, 재작년 대만과 일본 여행갈 때 들고 가긴 했지만 결국 핸드폰으로 더 많이 찍게 되더라구요.



2019년 타이베이 / 아이폰 XR



얼마 전, 서촌


얼마 전 서촌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거의 돌아다니지 않아서 거의 1년 만에 갔던 거 같아요.

평일 오후라 한산했고, 평소에는 가지 않던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며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낯선 곳을 찍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마치 여행이라도 간 것처럼 들떴어요.
한동안 강아지 사진과 찻잔 사진만 가득했던 핸드폰 사진첩에 낯선 풍경이 추가되고, 행복한 사진찍기는

저녁까지 마음에 남아 그 감상을 바탕으로 오랜만에 단골 바에 앉아 추상 작업 스케치도 하였어요.


2020년 서촌 / 아이폰 XR



2020 서촌 / 아이패드 프로, 프로크리에이트


사실은 매거진에 서촌 다녀온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핸드폰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보니 십수 년 전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진을 찍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도 그렇게 한참 사진을 찍고 단골 바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요. 지금은 업무로만 여기는 사진 촬영이, 원래는 나에게 이렇게 재밌는 놀이이며 
영감의 원천임을 새삼 다시 깨달았던 날이었어요.


올릴 사진을 정리하다가 장소, 시간, 기종은 다 다르지만 비슷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사진의 추억 1’입니다. 

숫자가 붙었다는 것은 이 뒤로 사진의 추억 2,3,4 등등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겠죠. 
첫 매거진 글로 무엇으로 쓸지 고민이 많았는데, 사진이 또 글에 대한 영감도 주었네요. 
‘사진의 추억 2’는 11월 26일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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