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OO나의 짧았던 고전 트로트 덕질기 (1)

스보헴
2020-11-11
조회수 267






  2019년 '미스트롯' 방영 이래 대한민국의 '트로트붐'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어르신들의 돈맛(?)을 본 방송사들이 ‘슈퍼스타k’ 때처럼 너도 나도 유사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고, 원조격인 TV조선은 후속편인 ‘미스터트롯’까지 대박낸 기세를 실어 ‘미스트롯2’를 준비중이라니- 내년 설에 거실 소파에 앉아 어항 보는 고양이마냥 멍~하니 설특집 연속방송을 보고 있을 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명절날 채널선택권이 없어 트로트 프로그램 1화부터 최신화까지 강제시청당하는 게 저뿐만은 아니겠죠. 심지어 허구헌날 재방송을 틀어놓으시니, 부엌에 물 마시러 갈 때나 화장실 갈 때 오며가며 한 소절씩 듣고 그러다보면 ‘트로트’라는 장르에 익숙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도 밀레니얼 세대로 교체되고 있는데(송가인, 임영웅) 청자만 그대로일 필요는 없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올해 설 연휴 저에게 ‘너는 연말에 트로트 덕질기를 쓸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을 것입니다. 정말로. 연휴 동안  본가에  유배되어 2박 3일 ‘미스터트롯’ 몰아보기를 강제시청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때만해도 횡성 한우같은 플라스틱 소를 타고 끈적한 눈빛을 보내는 본선진출자들을 보는 순간, 수치를 모르는 노골적인 연출에 입을 가리며 “아니 세상에 이게 뭐야!”라고 빽 외쳤지 말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나훈아, 남진보다 한참 전 노래를 듣고 빠지게 되었는지…


시작은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냥 예능에 나온 송가인을 보며 '아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했고, 어쩌다 한번 유투브에 그녀를 검색해봤고! 최상단에 뜨는 ‘송가인 무대 모음 동영상’을 클릭했을 뿐이고! 정신 차려보니 




시청기록이 송가인 무대로 도배되어있더군요.


아니, 정말, 진짜로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더라구요? (중요하니까 강조)

저는 람슈타인부터 오마이걸까지 장르 가리지 않고 내 귀에 좋으면 장땡인 사람인지라, 송가인이 부른 트로트를 듣고 감격한 건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특히 미스트롯 결승에서 불렀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처음 영상을 봤을 때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파트를 얼마나 절절하게 부르던지! 듣자마자 바로 남루한 차림으로 철사줄로 묶여 인민군에게 잡혀 끌려가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리고 퇴근길 버스에서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지는 현재 시골에서 멀쩡하게 농사 짓고 계십니다.)


그런 다음, 꽂히면 a부터 z까지 샅샅이 뒤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습관대로 원곡을 찾아 들었고, 검색하다보니 가사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콘텐츠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걸 보고 한국전쟁이 그 시대를 살던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이마를 때리게 되더군요.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하다 인공눈물이 없으면 유투브에 들어가 송가인 버전을 틉니다.
1분 안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Miracle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인류의 문화 정보를 백업시켜 화성에 꽂아둔다면 음악 파트에서 고전 K-POP으로는 BTS 노래와 함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진심입니다. 이런 명곡을 사장시키는 건 동북아를 넘어 인류의 손실입니다 여러분!


‘단장의 미아리고개(1956)’는 작사가 반야월이 한국전쟁 때 미아리 고개 (현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 인근)에서 어린 딸을 잃은 경험으로 작사한 노래다.  ‘단장’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뜻하며, 미아리 고개는 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수많은 가족이 생이별한 장소로 유명하다.
(내용 출처: 두산백과, 위키피디아 / 이미지,내용 출처: 경향신문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한 곡만으로도 글 10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너무 길면 형평성이 맞지 않으니 이 얘기는 이쯤 하고, 

그렇게 노래를 200번쯤 듣고 있으니 부모님보다 저에게 빠삭한 유투브 알고리즘님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주시더군요.




그렇게 듣게 된 남인수의 무정열차(1957)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들었는데 남인수의 미성과 애절한 분위기가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가사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밤차는 가자고 소리소리 기적소리 우는데
옷소매 잡고서 그님은 몸부림을 치는구나
정두고 어이가리 애처로운 이별길
낙동강 구비구비 물새만 운다 눈물어린 경부선


떠나는 가슴에 눈물눈물 서린눈물 고일때
새파란 시그널 불빛도 애처로운 이 한밤아
마지막 인사마저 목이메어 못할때
쌍가닥 철길위에 밤비만 젖네 울고가는 경부선


아득한 추풍령 고개고개 눈물고개 넘을때
희미한 차창에 그얼굴 떠오르네 비치네
기차도 애처로히 허덕지덕 달릴때
새빨간 님에순정 가슴에 젖네 비내리는 경부선


가사출처: 벅스 
(“애처로히”는 오타가 아니고 가사 원문이 그렇습니다.)



가사엔 시그널이라 되어있지만 부를 때 “씨-그-날”로 발음하는 게 정말 옛날 노래였습니다.

처음 들었을 땐 ‘괜찮은데?’ 정도였고, 두 번째 재생부턴 ‘어 이거 괜찮네’하면서 연속재생…


노래가 발표된 1950년대의 기차역은 숱한 이별이 이루어지는 장소였겠죠. 근데 가사 시점이 한밤이에요. 밤에 기차를 타고 헤어져야 할만큼 급한 일은 뭐가 있을까요? 

기차가 지금처럼 빠르지도 않았을 테니 밤차를 타면 꼼짝없이 새벽에 도착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역에서 내리면 이동수단도 없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그 상황을 노래하는 남인수의 목소리는 왜 이렇게 애절할까요? 이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면서 과몰입이 이루어지고 ‘아니 어떻게 이런 가사를 이렇게 부를 수 있지!’ 하고 감탄하면서 가슴이 웅장해지고 "천재다! 이사람은 천재야!"하면서 무한반복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가 이 곡을 티타임에 틀었을 때 스보헴 다른 멤버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엥??’이었어요. 

보통 사무실 선곡은 오래된 노래라고 해봤자 ABBA나 데이빗 보위인데 막내가 갑자기 트로트를 재생하니…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멤버들은 영혼이 늙어버린 막내에게 뭔가 또 새로운 바람이 불었나보다 하고 쿨하게 넘어가주었습니다.



그렇게 무정열차로 시작해 남인수의 히트곡을 역주행하기 시작했는데, 아니 글쎄 이 사람 데뷔가 1936년인거에요. 


1996년도 아니고 86년도 아니고 36년…? 

심지어 출생은 1918년






(심정을 표현할 적절한 짤방을 찾을 수 없어 빈 화면으로 대신합니다.)




‘산유화’, ‘애수의 소야곡’, 그리고 지나가면서 제목은 들어봤을 ‘이별의 부산 정거장’까지.

데뷔한 1936년부터 폐결핵으로 사망한 1962년까지 남인수가 발표한 곡은 수백 개이고 그 중 일부는 후배가수들을 통해 21세기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 주현미가 후배라니)


그렇게 남인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천리안을 가진 유투브님께서 동시대 가수인 백년설, 이난영의 노래도 추천해주셔서 입덕시기가 한 세기쯤 늦은 늦덕은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오랜만에 덕질거리가 생겨서 행복한 덕후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땐 몰랐죠, 얼마 안 가 상상도 못한 사유로 제가 그를 손절하게 될 줄은.

(이유를 짐작하는 분들은 2편까지 기다려주세요!)




- 나의 짧았던 고전 트로트 덕질기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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