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EUN사진의 추억 (2)

스보헴
2020-11-25
조회수 298




이번 사진의 추억 2편에서는 제 사진이 아닌 남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사진의 추억 1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요. 사진작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사진의 역사 등이 아닌 사진을 이용한 실험 영화입니다.


요즘처럼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 아닌,  필름 카메라로 찍어 인화지에 인화한 사진을 손에 직접 쥐어 보던 시절, 하여간 그 옛날 옛적, 사진에 얽힌 추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반복된 규칙이 쌓여 완성되는 구조 영화 (Structural film)


우선 이 영화의 형식에 관해서 설명해드리고 싶어요. 


실험 영화에는 의외로 다양한 형식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던 스타일도 있고요. 1960-70년대는 작가들이 실험 영화에 ‘규칙’을 부여해 ‘구조’를 만들어보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그 규칙이란 게 복잡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반복하기 쉽도록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공을 같은 높이에서 여러 번 떨어뜨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공이 바닥에 떨어진다’는 ‘규칙’는 반복되지만 공이 튀어 오르는 방향과 포물선은 조금씩 다를 거예요. 그렇게 같은 위치에서 공을 열 번쯤 떨어뜨리는 것을 촬영하고 이어 붙이면 짠! 구조를 가진 실험 영화 하나가 하나 탄생합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규칙이 쌓여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미세한 다름을 관찰하는 것이 이런 영화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된답니다. 



핫플레이트 위에서 타는 사진 (nostalgia)



노스텔지어 (nostalgia) / 홀리스 프램튼 Hollis Framtom, 1971


‘사진의 추억’을 가진 이 실험 영화는 이런 구조 영화(Structural film)의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nostalgia)”라는 제목의 홀리스 프램튼이 만든 1971년 작품입니다. (원제가 괄호안에 소문자로 쓰여있어요)


이 영화는 홀리스 프램튼이 찍은 사진에 관해 설명합니다. 나레이션은 홀리스 프램튼의 친구이자 그 역시 실험 영화 감독인 마이클 스노우가 맡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홀리스 프램튼은 사진을 찍게 된 계기와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인물사진이라면 누구를 찍었는지,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지 구구절절 이야기해요. 그런데 첫 번째 사진과 들리는 설명은 전혀 일치하지 않아요. 전혀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 핫플레이트에 놓인 사진은 점점 타들어갑니다. 사진이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 재가 되고 나면 그다음 사진이 핫플레이트에 올려져요. 두 번째 사진이 등장했을 때야 관객들은 첫 번째 설명이 바로 이 두 번째 사진에 대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항상 사진에 대한 설명이 선행하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그 사진이 등장합니다.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앞서 설명했던 사진이 타고 있습니다.



더 알기 쉽게 영화의 구조를 그림으로 설명해 봅니다. 


이 영화의 구조는 ‘이미지의 죽음과 탄생의 연결’입니다. 사진에 관해 설명할 때 아직 보이지 않는 사진에 대한 이미지는 화면 속이 아니라 관객의 머릿속에서 잉태됩니다. 그리고 작가의 설명만으로 상상했던 그 사진이 비로소 화면에 등장(태어났을) 때 사진은 바로 핫플레이트 위에서 죽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바로 다음에 나타날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또 머릿속에 새로운 이미지를 잉태하는거죠.



영화에서는 마치 그 사진의 일생을 애도하듯 자세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습니다. 사진마다 추억이 다르듯 타들어 가는 모양도, 탄 사진이 남긴 재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화학물질이 묻은 종이가 타서 남기는 재일 뿐이고, 핫플레이트에 가장 먼저 닿는 부분 또한 다르므로 타는 모양과 재의 형태가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에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렇게 남는 재의 모양이 사진마다 다른, 추억의 영혼 같이 느껴져요. 또 그 추억이 죽으며 탄생시킨 새로운 추상적 이미지 같기도 하고요.



사진을 태우는 행위는 실제 생활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있어요. 요즘엔 잊고 싶은 기억이나 사람이 찍힌 사진들을 터치나 클릭 몇 번으로 지울 수 있지만 20세기에는 추억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사진을 실제로 태우는 행동을 하곤 했답니다. 사진을 찢어버리지 않고 굳이 ‘불태운다’라는 선택을 통해 물질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행위는 사진에 새겨진 추억과 남은 감정을 떠나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진을 태우면서도 그것들을 영원히 필름 안에 가둬버린 행위는 애틋한 미련이고 사그라지지 않은 슬픔의 흔적입니다. 마치 잊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장례식을 기록한 영화 같달까요. 영화 원제인 “(nostalgia)” 또한 괄호 안에 ‘nostalgia’라는 단어를 가둬두었습니다. 떠나보내지만 그래도 떠나보낼 수 없는 그리움을 제목으로도 표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 영화가 제가 본 실험 영화 중 가장 슬픈 영화로 기억됩니다. 


참 이상해요. 사진 태우는 장면만 이어지는 단순한 흑백 영화가 볼 때마다 항상 아릿한 감상을 남긴다는 일이요. 


혹시라도 영화를 직접 보고 싶으신 분을 위해 유튜브 링크를 올려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MDL1TgTh4





Hollis Framton

1936 3. 11 - 1984 2. 20

오하이오 출신


1962년 친구에게서 볼렉스 카메라를 빌려 첫 실험 영화 촬영

1966년 드디어 볼렉스를 구입, 본격적으로 실험 영화 감독으로서 작품 활동 시작.


대표작

Zorns Lemma 1970 - 뉴욕필름페스티발에서 상영된 최초의 장편 실험 영화. 알파벳과 수학적 시스템을 이용한 구조 영화.

(nostaliga)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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