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OO짜고 달콤한 단어들 - 시

스보헴
2021-03-17
조회수 261







제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들 & EBOOK으로 산 시집들 




'시'라는 장르를 좋아하게 된 지는 채 5년이 안 된 것 같아요.


관심이 없었을 때 제가 아는 시라곤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문장으로 유명한 유치환의 '깃발' 정도였습니다. 아, 이육사의 '광야'도 있네요. 이쯤에서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전부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 등재되었던 시들입니다. 한 마디로 학교에서 배운 시 빼고 아는 시가 없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설명은 유투브 민음사TV 채널의 '조대한의 잡덕사전 4편'에서 북튜버 겨울서점님과 조대한 문학평론가님이 명쾌하게 집어주신 것 같아요.(링크) 두 분의 말씀대로 '시'만 보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 쳐가며 비유와 화자의 의도와 기법 찾는 훈련을 했으니, 시를 보면 왠지 단어의 의미를 알아맞혀야 할 것 같고~ 또 그걸 모르면 시를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시는 거들떠보지 않는 어른이 탄생!\(^Q^)/ 짝짝짝!


개인적으로 겨울서점님의 "소설이 영화면 시는 사진이므로 그냥 보고 좋으면 된 거다."라는 말에 많이 공감했어요.
시를 좋아하게 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거든요. 한눈에 보았을 때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이런 거죠.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데 어렵게 생각해서 괜히 시를 명왕성보다 더 머나먼 존재로 여기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른이 되어 시를 읽게 된 계기는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최승자 시인이 쓴 시가 지금의 너와 (여러모로) 비슷하니 한번 읽어보라'고 하기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았습니다. 최승자라는 이름은 몰라도 아래 두 문구는 본 적 있는 분들이 많으실 거에요.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中>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 '삼십세' 中>




아니나 다를까 추천 받은 '이 時代의 사랑'(문학과 지성사, 1981)를 펴서 첫 시를 읽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꽝! 하고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저를 강타했어요.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까지 제 안의 '시'란 예쁘거나 점잖은 이미지였거든요. 최승자 시인의 중독적일만큼 어둡고 강렬한 시는 그런 저의 편견을 깨끗이 쓸어버렸습니다.



<이 時代의 사랑> 첫 페이지를 장식한 시, '일찌기 나는' 



그 뒤로 그 분이 낸 시집과 번역한 시집들을 찾아 읽고 그러다 발견한 다른 시인의 시들도 읽고, 그러다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시를 좋아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최승자 시인 외에도 허수경, 마종기, 나태주, 박준 등 많은 문인들의 시집을 읽었지만 첫 단추를 꿰게 만든 게 취향의 골자를 만든다고, 아직까지 저의 원픽은 최승자 시인입니다.

서점에서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는 시인선 하나를 집어들었다가 '이렇게 얇은 책이 9천원이나 한다고?'하면서 질겁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일정기간 시를 읽지 않으면 금단증상 온 중독자처럼 안절부절하며 하루종일 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버립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시집은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2012)'인데, 처음 읽은 건 아니지만 문득 다시 읽고 싶어져서 전자책으로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집만큼은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집에 있는 책이 300권이 넘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로 가급적 전자책을 사고 있어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요. 요즘은 음악을 듣다가, 아니면 책을 읽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뭔가 떠오른다 싶으면 후다닥 공책을 꺼내 자작시를 적습니다. 쓰고 나서 나름 뿌듯함에 콧대를 치켜들다가도 며칠 뒤에 보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 짜게 식은 표정으로 엑스표를 직직 그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래는 이번 매거진의 제목을 따온 제 자작시입니다. 퇴근 후 <올드걸의 시집(은유 저, 서해문집, 2020)>을 읽다가 끄적인 녀석인데, 혹 비슷한 시가 있다면 저희 공식홈 Q&A 게시판을 통해 살짝 알려주세요. 예전에 읽고 기억 못하는 시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시>

눈으로 들어와

목구멍으로 넘기는

짜고 달콤한 단어들.




가끔 시를 읽는 게 다양한 맛의 사탕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리포터에 나온 다양한 맛이 나는 젤리처럼 시집에 따라 딸기맛 사탕부터 코딱지맛 사탕까지 아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더불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응집시킨 단단한 매개체라는 점에서 시가 사탕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쓴 건 아주 쓰고, 단 건 혀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답니다.



집어든 것이 어떤 맛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그것 <이미지 출처: amazon>




자기 취향의 '운명의 시인'만 찾는다면 '시 중독자'가 되어버리는 건 한순간이에요. 마음에 드는 시는 여러 번 읽고 사탕처럼 입 안에서 굴려가며 녹여서 먹어보세요. 생각날 때 하나 꺼내 야금야금 먹으면 아주 맛있답니다.



제가 쓴 오늘의 매거진은 여기까지에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스보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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