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RA소금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1)

스보헴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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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형견과 사무실에 출근 하고 있습니다.

몸무게 28kg의 믹스견, 이름은 소금이에요.


사무실의 언니가 장난삼아 장갑을 끼워준 소금이, 간식을 바라보고 있어요.


소금이를 만나기 직전까지 저를 다시는 개를 입양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반려견들이 하나하나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큰 상실감과 슬픔을 겪었거든요. 다만 언젠가는 새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을 임시보호해주는 봉사 정도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구조된 날, 3개월차의 소금이


세상에 나온지 3개월 째인 소금이는 보신탕집에 팔려갈 위기였어요.

2018년 3월 29일, 구조된 소금이는 지낼 곳이 없었기에  새로운 임보처나 입양처가 나오기 전까지 잠시동안 스보헴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해 사무실에 동반출근하며 돌볼 생각이었지요.

고맙게도 각자 반려동물이 있는 스보헴 구성원들은 흔쾌히 승락해주었습니다.


임보 첫날, 4개월차의 소금이


그렇게 만난 소금이는 4개월차에 이미 11kg.  덩치는 한국 기준 중형견에다 원숭이 라인이 막 생겨나고 다리도 길어지기 시작하는 성장기였습니다. 하지만 쑥쑥 자라는 몸과 다르게 정작 소금이는 바깥세상이 무서워 구석에 고개를 파묻고 숨만 쌔액쌔액 몰아쉬는 아가였답니다.

겁에 질린 소금이를 보며 저는, 소금이가 밝아질 수 있도록 산책을 포함한 사회화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SNS에 홍보해 하루 빨리 좋은 가족 만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소금이와 지내는 동안 스보헴에는 예상 밖의 활력이 생겨났답니다.


임보 12일차, 2018년 4월 10일의 소금이


아침잠이 많은데다 일을 끊지 못하고 늦게까지 붙잡는 습관이 있었던 저는 소금이 산책을 위해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새벽까지 무리해서 일하기보다 스케쥴링을 더 촘촘히 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소금이가 없었다면 아침은 항상 졸린 상태로 보냈을텐데, 산책을 하면서 개운해진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매일을 여는 아침산책 시간은 제 생각과 마음의 여유를 돌보는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한가로운 산책로, 맑고 서늘한 공기, 아침 햇살을 반사하는 잔물결, 모두 소금이가 준 선물이었지요. 허리 디스크에서 회복될 때에도 소금이와의 산책은 재활과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금이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조금 회복되었다고 앉아서 일만 하다가 또 악화되었겠죠. 산책길에 신나서 팔랑거리는 소금이의 귀와 꼬리, 그리고 이따금씩 저를 돌아보며 짓는 표정은 그 자체로 제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 못지 않게 하루종일 꼼짝 않고 앉아서 일만 하기 일쑤였던 스보헴 구성원들도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 소금이 점심산책 해야 한다!'며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다같이 하천을 따라 걸으면서 계절마다 줄지어선 가로수와 꽃들이 바뀌는 풍경을 함께 나누게 되었고, 소금이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 청둥오리나 쇠백로, 왜가리 같은 새들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하천에 그렇게 다양한 새들이 살고 있는 줄은 몰랐지 뭐에요.

누군가가 아이디어가 막히거나 스트레스가 많아지면 벌떡 일어나 소금이 산책줄을 꺼내거나, 소금이 에게 다가가 털을 빗어주거나 놀아주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2021년 초, 단골카페에서 간식을 기다리는 소금이


산책코스 반환지점에 있는 반려견 동반 카페는 곧 소금이의 단골 카페가 되었어요. 혼자 올 땐 시크하게 접대하던 카페 사장님은 소금이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고, 물을 줘도 되는지를 물어보셨답니다. 첫 방문에서 간식을 얻어먹은 소금이는 다음날 산책로 너머에 있는 그 카페에 가겠다고 산책로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어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 카페에서 쉬고, 호의를 가진 사람들과 교감하는 경험은 소금이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2018년 4월, 카페에 가고 싶다고 벽을 타는 소금이


하지만 이때까지도 여전히 저는 소금이를 입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임시로 집 한켠을 내어주고 건강과 행동을 살피고 교육하는 것과,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것은 저에게 있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거든요. 가족이 된다는 것은 온전한 애정으로 책임지고 반려동물의 생로병사를 함께 하는 일이잖아요? 저는 이때까지도 이미 마음에 자리잡은 소금이를 향한 애정보다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해야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임보가정은 어디까지나 살뜰한 기숙학원이어야지, 그 이상이 되면 아이가 입양가서 적응 못 해'라고 생각하며 선을 지키려고 애썼어요.

한국에서 대형견에 대한 편견을 겪으며 눈칫밥을 먹게 하느니 인식이 더 앞선 해외로 입양을 보내는 게 소금이에게 더 행복한 길이지 않을까, 하며 해외입양처를 열심히 알아보고 켄넬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고기 분쇄기의 등장


입양계기, 혹은 핑계가 생긴 건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된 고기 분쇄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그 전까지 동물을 키워본 적 없지만 임보가 결정되자 임보 전날까지 퍼피 라이센스와 긍정강화 교육, 산책교육을 열심히 공부하고, 저보다 더 세심하게 소금이를 챙기곤 했습니다. 동물과의 교감을 처음으로 경험해본 사람들이 쉽사리 임보를 종료하지 못하고 정이 들어 입양을 원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남편은 평소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고 냉정한 성격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소금이가 백신 알러지를 겪은 이후 소양증(가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반려견 생식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넌지시 말하더라고요.


'아 생식이 이게...  고기 분쇄기가 있으면 만들기 편한데.'

'곧 입양갈 앤데 무슨 고기 분쇄기야.'

'그래...역시 그렇지?'


그렇게 대답해놓고서는... 말없이 고기분쇄기를 주문하고, 주말에 다섯 시간 동안 서서 고기와 내장, 뼈, 채소, 과일을 손질해 소금이만을 위한 생식을 만들었습니다.


'분쇄기까지 사다니 소금이 입양가고 나면 저건 어떡하려고 그래?'

'아니야, 쓸 데 많아~ 겸사겸사 소시지도 만들고 그러면 되지!'


반려자가 소금이의 양육에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줄수록, 마음이 다시 기울었습니다.

...참고로 저희집 고기 분쇄기는 그 뒤로 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소시지를 만드는데 쓰인 적이 없게 되었습니다.


소금이와의 에피소드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그 때까지, 스보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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