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RA마음을 사로잡은 시대의 포스터들

스보헴
2021-05-27
조회수 180


여러분의 벽에는 어떤 이미지가 걸려있나요? 

요즘 사랑받는 마티스의 그림일까요? 아니면 인생 영화 포스터, 혹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 사진인가요?

저는 포스터를 좋아해요. 말 그대로 홍보, 전시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포스터들이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중


호그와트 기숙사 벽에는 움직이는 초상화들이 있잖아요?

저는 포스터들을 볼 때마다 마치 그 초상화들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시간대에서 생을 살았던 사람이 품었던 생각과 감정의 에센셜한 순간이  그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는 것 같거든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포스터를 몇 점 소개해드릴까 해요




평화, 사랑, 그리고 자유에 바치는 찬가 - 시대의 향기 L'air du temps


1948년 Femina 매거진에 실린 니나 리치의 향수 'L'air du temps' 광고

읽어봅시다. 레흫뒤땅


니나 리치의  'L'air du temps'은 저의 첫번째 향수였어요. 

18살 생일에 큰아버지가 선물해주셨거든요. 어머니의 화장대에도 향수가 있었지만, 어쩐지 향수란 어른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물건 같았어요. 그런데 '이제 향수가 어울릴 나이' 라니. 드디어 어른이 될 준비가 갖춰진 것 같아 뿌듯했죠. 향기도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교복은 물론이고 이불, 베개, 커튼, 벽, 사방에 이 향수를 뿌리곤 했어요. 요즘이야 향기제품이 세분화되어 룸 스프레이,  필로우 미스트, 패브릭 퍼퓸, 온갖 형태로 나오지만 Latte is horse... 그런 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L'air du temps' 은 사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향수였어요. 패션하우스인 '니나 리치'에서 니나 리치 여사의 아들 로베르 리치가 1948년에 만든 향수인데요. 1945년에 끝난 2차 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 평화와 자유의 향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해요. 시대 정신을 선언하는 향기라니 정말 대담하고 로맨틱하지 않나요?

'시간의 향기'라고 번역되곤 하지만 'temps'는 보통 시간 중에서도 현재를 가리키기도 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이) 시대의 향기' 라는 뉘앙스로 다가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클래식한 디자인의 향수

 

이 제품의 첫번째 포스터에서도 등장하는 비둘기는 'L'air du temps'의 상징이기도 해요. 비둘기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이 우아한 향수병은, 유리공예의 명가 랄리크에서 제작했습니다.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보석 디자이너이자 유리 공예가인 르네 랄리크에서 시작된 '랄리크'는 현대 향수의 창시자인 프랑수아 코티의 향수 브랜드 '코티' 사의 향수병을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해요. 그리고 이 르네 랄리크의 둘째 아들 마크 랄리크가 로베르 리치와 죽마고우였다고 하네요.


1948년의 이 포스터 이후 'L'air du temps'의 광고 이미지는 실제 인물을 찍은 사진과 TV광고로 대체되었어요.



동명의 노래가 흐르는 80년대 TV 광고. (화질의 압박...)


하지만 제게는, 소녀를 포옹하듯 날아드는 비둘기 선화가 'L'air du temps' 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져요. 

사실 이 포스터의 일러스트레이터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서명은 흘려쓴 글씨라 읽기 힘들었지만 대문자 'R'로 시작했기에, 당대 니나 리치의 일러스트를 많이 담당했던 작가 크리스티앙 베라르 Christian Bérard  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포스터는 저에게 더 아련하고 신비로운 느낌으로 남아있어요.

이 포스터는 이제 구하기 어렵지만, 인터넷에서 원본 파일을 유료판매하고 있답니다. 저도 파일을 구매해서 출력소에 맡겨 인쇄할까  해요.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래 판매처를 참고하세요 :-)

https://hprints.com/en/item/50429/Nina-Ricci-Perfumes-1948-LAir-du-Temps




올림픽 아트 포스터 - 예술과 스포츠의 만남


1972년 뮌헨 올림픽 공식 아트 포스터, 데이빗 호크니


올림픽 아트 포스터의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요. 그 중 제가 좋아하는 포스터는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공식 포스터 15개 중 하나였던 데이빗 호크니의 작품이에요.



'A Bigger Splash', David Hockney, 1967

데이빗 호크니는 이 그림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죠.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조각난 물결 위에 다이빙 하는 사람의 모습이 비치면서 시선이 모아지고, 어쩐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과 첨벙, 하는 소리, 관중들이 박수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런 포스터였어요.

1972년 뮌헨 올림픽은 냉전시대, 분단국가였던 독일에서 두번째로 열린 올림픽이었어요. 독일의 첫번째 올림픽은 1936년 나치 치하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고, 우리에게는 손기정 선수와 함께 기억되는 이름이기도 하죠. 두번째 올림픽은 그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밝고 희망찬 올림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해요. 귀여운 닥스훈트가 마스코트였던 뮌헨 올림픽 초반의 밝은 분위기는 데이빗 호크니의 맑은 물빛 포스터에서도 느껴져요. (정말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선수촌 테러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폭격이라는 참사가 연이어 일어나 주최국의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만요...)



2020년 12월 부산, 포스터리티.


재미있게도 이 포스터는 부산에서 발견했답니다.

업무를 마치고 KTX를 타러가기 전, 딱 40분의 시간이 남았길래 새로운 장소를 둘러보자 싶어 문탠로드 뒷편으로 걸었어요. 갤러리와 플로리스트 스튜디오 사이에 있는 빈티지 포스터 샵을 보고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이 포스터를 발견했죠.

혹시 데이빗 호크니의 뮌헨 올림픽 아트 포스터와 빈티지 포스터 샵 '포스터리티' 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poster_ity/




숨쉬는 법을 다시 알려준 - 금호미술관 김보희 개인전


2020년 금호미술관 김보희 작가 개인전 포스터


2020년의 여름은 말 그대로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한달 넘게 비가 와 덥고 습한 날씨에,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에 갇힌 기분이었죠. 지금이야 실수로 마스크 없이 문을 나서다가도 '왜 자유롭고 시원한 기분이 들지....? 이건 비정상인데...' 할 정도로 마스크에 익숙해졌지만, 그 때는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친구들을 만나거나 공연장, 여행을 가는 일상이 다 사라지면서 코로나 블루가 오기 시작했고, 길을 걷다 마주치는 턱스크, 노마스크인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고요.

숨통이 막혀오는 기분에 시달리다, 덥더라도 밖에서 걷고 싶은 마음에 경복궁 근처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금호 미술관을 들어갔어요. 희고 넓은 공간에 걸린 큰 그림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사람이 많으면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한 층에 한두명 뿐이라 조금은 안심하고 입장을 결정했어요. 와 그런데, 세상에.



The days, 김보희. 2014.

전시회장 가득 온통 짙은, 그러나 온화한 초록빛이 마스크 안으로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답니다. 특히 한낮부터 밤으로 이어지는 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했어요.

늘 '예술작품은 공공에게 공개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왜 사람들이 그림을 사적으로 소유하려고 하는지 이해'는' 했습니다.

대저택이 있다면 온전히 이 그림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의자만 하나 두고 앉아 한없이 그림에 물들고 싶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욕심쟁이여서는 안됩니다...! 아무튼 안됨. 네. )


Towards, 김보희. 2017.


그후 이 전시회는 그림의 힘으로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 와중에 BTS의 리더 RM씨가 관람하면서... 줄을 서서 기다려 들어가는 수준이 되어 데이빗 호크니 전시회보다도 핫해지고... 제가 갔던 때에는 없었던 포스터 굿즈도 판매했더라고요...? (배신감)

네, 김보희 작가님의 그림 저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판매했던 포스터 굿즈보다는, 김보희 작가님의 반려견 레오가 그려진 전시회 포스터가 너무나 갖고 싶더라고요.

멀리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는 온갖 종류의 초록이 가득하고, 테라스에는 누군가 걸어와 앉을 것만 같은 빈 의자가 있어요. 늘 있던 곳인 듯 편하게 앉아있는 검은 개의 옆에 앉아 그 등을 쓸어주며 함께 먼 바다를 보고 싶은 그런 그림이 담긴 포스터.

이 전시회 포스터는 판데믹 시대의 저를 치유해준 그 날이 함께 기록된, 또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와요.


.

가로형 세로형 크기 가리지 않습니다... 꼭 구하고 싶네요...


올해에도 김보희 작가님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김보희 작가님의 새 전시회가 6월 1일부터 7월 3일까지, 스페이스캔에서 열린다고 하니 꼭 한번 들러보세요.

https://www.instagram.com/can_foundation/



2 0